11월 21일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유죄를 인정하고, 43억 달러(한화 5.5조)에 달하는 벌금을 미국 정부와 합의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기업이 내는 벌금 중 최대 규모입니다. 과거 비슷한 혐의로 HSBC가 냈던 벌금에 두 배가 넘습니다. 더불어 최고경영자(CEO)인 자오 창펑도 벌금 5,000만 달러를 내야 합니다. 이 결과로서 바이낸스는 미국 시장에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바이낸스는 현시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가상화폐거래소입니다. 한때 세계 가상자산 거래의 2/3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의 44%가량을 차지합니다. 바이낸스가 미국으로부터 이런 천문학적 벌금을 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자금세탁과 국제 제재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출처-<YTN>

1. 무엇을 위반했나

바이낸스가 미국 정부에 벌금을 내야 하는 이유는 자금세탁을 방조(幇助)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애국자법(PATRIOT ACT, 또는 반[反]테러법)'에 따라 미국에서 거래하는 금융기관은 테러 자금을 조달하지 말아야 하며, 자금세탁방지 법규를 준수해야 합니다(참고기사: <돈세탁이 뭣이 중헌디: 안 보이는 곳에서 자금세탁을 막고 있는 것들>). 그런데 바이낸스는 고객의 실제 신분을 파악하는 의무를 위반하거나, 자사의 가상화폐거래소를 통해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하마스의 무장단체인 알카삼 여단,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IS) 등 테러단체를 비롯해 마약과 인신매매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거래를 했음에도 이를 미국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북한과 이란, 시리아 등 미국의 제재 대상국에 있는 이용자들에게도 거래도 허가하였습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바이낸스는 10만 건이 넘는 거래에서 아동 성적 학대, 불법 마약, 테러에 이르는 불법 행위자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메릭 갈랜드 미 법무부 장관은,

"바이낸스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일부는 그동안 저지른 범죄 때문"이라며

"그 결과, 바이낸스는 미국 역사상 기업으로서 가장 큰 벌금을 내게 됐다"

고 말했습니다. 결국 바이낸스는 미국 당국으로부터 기소당했고, 미국 정부가 부과한 역대 최고 벌금을 내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여기서 '합의'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기관이나 기업, 국가들은 미국부터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립니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하는 나라입니다. 합의는 단순히 천문학적인 액수의 벌금 납부로 끝나지 않습니다. 법을 위반한 사유를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인적자원과 시스템 등을 도입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최고경영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없게 되거나 주주 권리가 박탈됩니다. 이러한 다양한 처벌 사항을 두고 미국 정부가 피고와 합의합니다. 이 합의의 일환으로 바이낸스 최고경영자 자오 창펑은 최대 주주 지위는 보장받지만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 합의 중에 최고경영자의 경영 참여 금지와 주주 지위 박탈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으리라 추정합니다.

만약 바이낸스가 계속해서 거래소를 운영한다면 미국 정부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자금세탁방지 제도를 도입해야 했을 터입니다. 그러려면 기존에 바이낸스를 이용하던 고객에게 더 많은 개인정보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필요할 때는 의심스러운 거래를 보고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도 마련해야 했을 것입니다. 설령 미국이 요구하는 방침을 수행한다 해도 감독 당국의 압박과 정기적인 감사가 지금까지보다 미국 내에서 거래소를 운영하기 더 까다로워지면 바이낸스를 이탈하는 고객이 늘어날 것이기에 미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으리라 봅니다.

2. 바이낸스가 뭘 어떻게 했나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자금 세탁 관련 제재를 위반하는 사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불법 거래인 줄 알면서도 이를 감추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들의 기관에서 불법 거래가 일어난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불법 거래를 감시하는 여과(필터링) 시스템이나 보고 체계가 구축되지 않는 등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바이낸스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경우는 첫 번째류의 상위 호환 버전입니다. 법원 조사를 통해 바이낸스의 규정 준수 담당자가 2019년 2월 채팅 중에 아래와 같은 문구를 담은 배너가 회사에 필요하다고 농담조로 쓴 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요즘 마약 자금을 세탁하기가 너무 어렵나요? 바이낸스로 오세요. 케이크를 드릴게요(is washing drug money too hard these days - come to binance; we got cake for you)."

케이크(Cake)는 바이낸스에서 사용하는 전용 화폐입니다. 마치 은행처럼 바이낸스에서 가상화폐를 환전하고 케이크로 다시 환전한 후 스테이킹(Staking. 소유한 가상화폐를 거래소에 맡기는 행위)을 통해 은행예금 이자처럼 일정량의 가상화폐를 받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금을 세탁하는 게 용이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바이낸스 측은 자사 거래소에서 일어나는 거래들이 불법적임을 인지한 것을 넘어 오히려 그러한 거래를 조장한 터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거래에 BNB(바이낸스 코인)라 불리는 자사 가상화폐 이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했습니다. BNB를 이용했을 때 거래 수수료를 25%까지 할인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금 세탁 중에서도 가상화폐를 이용한 작업은 블록체인이라는 특성상 외부에서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현금 : 가상화폐' 구조가 아닌 '가상화폐 : 가상화폐' 구조는 거래 특성을 숨기기에 더욱 용이합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미국 정부 당국이 정말 마음먹고 바이낸스를 조사한 것이라 봅니다.

"오늘 바이낸스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납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옳은 결단임을 압니다. 저는 실수를 했고 책임을 져야 하지요. 이것이 우리 조직을 위해 최선입니다. 바이낸스와 저를 위해"(출처-<자오 창펑 X(옛 트위터)>).

3. 미국의 정치적인 목적을 띤 일벌백계?

한편 이번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벌금 부과에 정치·경제적인 계산이 깔려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지난 6월 뉴욕 월가(Wall Street)의 시타델 증권, 피델리티 인베스트먼츠 등 초대형 금융사들은 수억 달러를 투자해 'EDXM'이라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설립했습니다. 실물경제를 다루던 월가 금융사들이 가상화폐까지 시장을 넓히려는 행보입니다. 더불어 현재 미국에서 가상화폐 ETF(Exchage Traded Fund, 상장지수펀드) 승인이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바이낸스에 대한 처벌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ETF는 인덱스펀드(특정 주가지수인 KOSPI 200, S&P100 등에 연동되어 수익률이 결정되는 펀드상품)를 주식거래소에 상장해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상품입니다. 이 ETF를 가상화폐에 연동시켜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아직 미국 정부의 승인이 나지 않았지만, 이번 바이낸스의 미국 철수가 ETF 승인에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리라 전망합니다. 앞으로 미국 내에서 운영되는 수많은 가상화폐 거래소는 지금보다 더욱 자금세탁방지에 대해 노력하고, 시스템을 갖추게 될 터입니다. 은행과 증권사 같은 메이저 금융기관들과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받고 이를 준수하게 된다면 가상화폐 ETF의 승인을 거절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약칭

더구나 가상화폐 ETF가 승인될 경우, 이에 따른 수수료 수익이 24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일 것으로 예측하며, 미국 금융시장에 새로운 수익이 생기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때 미국 내 점유율이 30%가 넘었던 바이낸스가 소송에 휘말리며 점유율이 1% 아래로 하락하고, 결국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바이낸스가 차지했던 점유율을 미국 내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가 흡수하여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터이니, 바이낸스의 미국 시장 철수는 미국 금융계와 정부가 주도적으로 계획한 일이란 의견입니다.

또한 바이낸스의 최고경영자 자오 창펑은 중국계 캐나다인입니다. 소송을 통해 밝혀진 그의 주소가 중국이 아닌 몰타로 알려졌지만, 과거에 중국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였던 오케이코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던 만큼 중국과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기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참고로 자오 창펑 바이낸스 창업자는 1977년생으로 캐나다 맥길대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했습니다. 2014년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 오케이코인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다가 2017년 홍콩에서 바이낸스를 설립했고, 현재 본사는 몰타에 소재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으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1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1위-일론 머스크:2720억 달러, 2위-제프 베이조스: 1870억 달러). 당시 그의 재산은 960억 달러(약 115조 원)였습니다.

지중해에 있는 몰타

출처-<구글맵>

4. 결론

이번 사태로 가상화폐 시장의 특성상 엄청난 변동성이 생기지 않을까 했던 우려와 달리 비트코인은 잠시 하락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오히려 바이낸스가 이번 합의로 사법 리스크를 제거했고, 업계 전반에 불확실성을 없애며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도 전망했습니다.

조만간 미국에서 가상화폐 ETF가 승인되고 나면 그동안 음지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는 가상화폐가 어느 정도 양지로 나오는 계기가 되리라 봅니다. 양지로 나오는 만큼 가상화폐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제와 감독도 심해질 것입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이들이 더 이상 '가상'이라는 단어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고 여겼습니다. 우리가 화폐라고 생각하는, 실체가 있는 현금이라는 것도 카드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점차 통장과 앱에서만 보이는 숫자가 되어버리는 듯합니다. 현금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특이점이 온다면 그때는 지금 우리가 '현금'이라고 인식하는 화폐와 현재 '가상화폐'라 불리는 것의 경계가 흐려질 듯싶습니다.

출처-<kanchanara/unsplash>

우리나라에서는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그만큼 거래량과 거래금액도 많지 않기에 지금까지 가상화폐는 투기성이 강한 시장으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가상화폐와 관련된 사건 사고들 때문에 인식이 안 좋거나 가상화폐 자체에 관심이 없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상화폐는 실물화폐를 대체할 수 없고, 투자가 아닌 투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낸스 사태와 미국이 가상화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언제나 그랬듯이 낯선 가상화폐도 좀 더 익숙한 시각으로 점차 바라보게 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