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방송된 미 CBS ‘60분’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ᆞ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CBS 방송 캡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 속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은 ‘큰 실수’(a big mistake)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섬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방송된 미 CBS ‘60분’과의 인터뷰에서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을 지지하느냐”는 진행자 물음에 “저는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하마스와 하마스의 극단적 요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NYT “이스라엘에 첫번째 자제 메시지”

이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전을 예고한 가운데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ᆞ하마스 전쟁의 확전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을 제지하기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첫 번째 의미심장한 공개적 노력”이라며 “그간 가지지구 포위작전을 편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삼가 온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면적 점령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관련해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우리는 가자를 점령하거나 가자에 머무르는 데 관심이 없다”며 “우리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고 유일한 방법은 바이든 대통령이 정의한 것처럼 하마스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헤어초크 주미 이스라엘 대사도 CNN에 “분쟁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가자를 점령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차준홍 기자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에 대해선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쪽의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남쪽의 하마스라는 극단주의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진입하는 건 필수 요건”이라며 “다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마스 섬멸 작전에 동의하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에는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제3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1967년부터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로 자치를 승인했고 2005년 주둔 병력과 정착촌을 모두 철수했다. 이후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했지만 2006년 총선 결과를 둘러싼 내분 끝에 다음 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세력을 몰아내고 가자지구 통치에 들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버금가는 야만 행위를 저지른 집단을 쫓고 있고 하마스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방식으로 거론됐던 ‘두 국가 해법’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여전히 그 방식을 추구할 거라고 보느냐'는 물음에 “지금은 아니다”고 했다. 두 국가 해법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사는 약 50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이스라엘 옆에 독립주권국가를 건국하는 방식으로, 수십년간 이어온 미 정부의 정책이었다.

이란 겨냥 “개입 말라” 거듭 경고

이란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선 단호한 어조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헤즈볼라와 그 단체를 후원하는 이란에 대한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진행자 물음에 바이든 대통령은 “하지 말라”(Don’t)는 말을 네 차례 반복했다.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마스 기습 공격의 이란 배후설에 대해선 “이란이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공격 계획을 도왔는지 현재로선 그런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번 신중동전에 미군 참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지상군 파병은 없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1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의 레바논 접경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 출마 계획을 묻는 말에는 “그렇다”며 “우리가 중동에서 관계 정상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여 왔는데, 이번 신중동전 이후 사우디가 관계 정상화 논의를 중단하기로 하고 미국 측에 알렸다는 보도(AFP통신)가 나온 바 있다.

미국은 이란의 직접적 참전 내지 이란의 대리 세력인 헤즈볼라의 개입을 통한 확전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CBS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북쪽 국경에서 헤즈볼라의 습격으로 인한 교전으로 확전의 위험이 더 높아졌다”며 “물론 이란이 직접 전쟁에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우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가자 남부 육상통로 재개방될 것”

미국은 가자지구 민간인 안전 확보 조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민간인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전날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통화한 사실을 전하며 “인도적 지원이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들어가고 충돌 확대를 피하기 위해 지역 파트너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카이로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난 뒤 가자지구를 빠져나갈 남부 육상 통로인 라파 검문소가 재개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남쪽 이집트 접경 지역에 있는 라파 검문소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에 들어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유일한 구호물자 보급로이자 탈출구다. 이스라엘군의 대피령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라파검문소 개방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이집트 당국은 검문소를 통제해 왔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레바논, 터키 주재 대사 출신의 데이비드 새터필드 전 대사를 중동 인도주의문제 담당 특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이스라엘에 급파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 뒤 요르단, 사우디, 이집트 등을 순회 방문한 블링컨 장관은 16일 이스라엘을 재방문한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추가 협의를 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